IT혁명의 영웅들: 소셜 커머스의 시초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야르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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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는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로 유학 왔던 이란 출신 부모님과 함께 6살이 되었을 때, 미국의 워싱턴 D.C.로 이사했는데요. 그의 학창시절은 애플 컴퓨터가 인기를 끌었고, IBM PC가 막 선을 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학교 도서관 카드를 전산화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당 6달러를 벌기도 했습니다.
그는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에 진학했고, 컴퓨터 과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애플의 자회사인 클라리스((Claris)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1991년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온라인 소매 회사인 잉크디벨로프먼트사를 공동 설립하고 인터넷 쇼핑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당시로서는 이러한 사업모델과 기술이 매우 획기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이후 이동통신 플랫폼 회사인 제너럴 매직에 들어가서 일을 했는데, 이곳에서 일하던 중 온라인 경매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아이디어

오미디야르는 오랫동안 대기업이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면서 광고에 거액의 돈을 투자하면서 상품 가격이 상승하는 방식보다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공정한 광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충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고, 집단 지성에 의해 적절한 가격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면,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상품의 가장 적합한 가치가 현실화되고 또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이상적인 마켓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오미디야르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비즈니스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품의 가격이나 유통 방식 등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불공정함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꿈을 실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금의 아내인 여자 친구가 취미 생활로 조미료나 사탕 등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수집하는 것을 보고 온라인 경매 방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입니다. 그러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겨 자신이 만든 경매 사이트에 고장 난 레이저 포인트를 올렸는데 누군가 14달러 83센트에 구입하면서 시작은 미약했지만, 창대한 성공 가도를 걷게 되는 이베이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한편, 이베이의 창업자인 오미디야르는 각양각색의 수집가들이 모인 한 연설에서 오늘의 이베이는 여러분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내일의 이베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여러분이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연결의 힘

오미디야르는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1995년 스탠포드 대학의 MBA출신인 제프 스콜과 함께 이베이의 전신인 옥션웹(Auction Web)을 창업했고, 1997년 이베이(eBay)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을 통한 상품거래는 이상한 것으로 취급 받았고, 사업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예를 들면, 인프라가 불충분해서 서버가 감당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도 있었고, 기업의 서비스가 마비되면 많은 사용자들이 손해를 보고 불평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또한 당장은 롱테일 효과(Long tail, 몸통에 해당하는 주류 상품보다 긴 꼬리처럼 다양한 상품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은 목록들과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끌지도 의문이라는 비판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러한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피에르 오미디야르의 경매사이트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합니다. 1997년까지 이베이의 경매 사이트는 급성장해서 3억 4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1998년에는 맥 휘트먼이라는 CEO를 영입하고 9월에는 뉴욕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창업자인 오미디야라는 거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00년에는 7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연중무휴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자 상거래 부문 1위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존 도나호가 CEO로 취임했으며 2009년에는 포춘지 선정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이베이의 거래 금액이 620억 달러에 달했고, 전 세계에 활동하는 회원만 1억 명에 달했습니다.
이베이의 거침없는 행보는 우리나라의 소셜 커머스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2001년에는 국내 최초의 경매 사이트인 옥션을, 2009년 4월에는 오픈 마켓 서비스인 G마켓을 인수했습니다. 이베이는 그렇게 고속 성장한 끝에 2020년 2분기에만 전년 보다 18% 성장한 28억 7천 달러(3조 4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20년 총 매출은 104억 달러 (약 12조원) 전망됩니다.
<포브스>의 편집자인 마이크 멀론은 이베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사업전략은 모든 사람이 모든 품목을 판매할 수 있게 하면서 사용자들 간의 거래에 대해서 일체 관여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웹 2.0 이후 시대의 특징은 수평적 관계의 직접적인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가진 특정 기관이 직접적으로 거래에 개입하며 조정하고 통제하려고 했다면, 21세기 온라인 세상에서는 상품과 개인이, 개인과 개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그 특징이 있으며, 이러한 특성을 중심으로 비즈니스에서도 전향적이고 다양한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통찰력과 창의성의 비즈니스

오미디야르를 본 사람들은 그가 상당히 겸손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어떤 것이 가장 올바른 의사결정인가에 대해 늘 고심했으며,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항상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결국 회사도 자신보다 더 잘 경영할 수 있다고 믿은 맥 휘트먼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회장 자리로 물러나는 용단을 보였습니다.
오미디야르는 기업 공개 후 수십억 달러를 벌고 갑부가 되었지만 시간이 상당히 흐른 후에도 그는 여전히 낡은 자동차를 몰고 다녔고, 여전히 임대 주택에서 살다 고향인 파리로 이사를 갔습니다. 오미디야르는 2004년 설립한 자선단체 오미디야르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이 쌓은 부를 사회에 활발하게 환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는 거액의 현금을 기부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자선단체를 넘어 기술과 자본을 연결하여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이 정상적인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미디야르의 이러한 독특한 삶의 양식과 무엇보다 기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발휘되는 그의 유별난 창의성은 다가올 시대, 소셜 커머스 업계에서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꿈꾸는 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현재에도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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