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IT 두번째, 한국 IT 산업의 출발점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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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점을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메인프레임 컴퓨터, PC와 인터넷이 주도하는 IT혁명이었습니다. 이 혁명은 반도체 기술로부터 시작된 컴퓨터 혁명이라고도 말합니다.
3차 산업혁명 이후, IT혁명의 기반이 된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나노기술, 인공지능, 유비쿼터스 등 신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생물학, 물리학, 뇌과학, 심지어 심리학, 사회과학 등 모든 산업과 학문이 연결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가 없는 4차 산업혁명은 사상누각이며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2번째 버전, 확장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이 끝나고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3차 산업혁명이 성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가 진입한 특출한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덧붙인 이름인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 혁명, 디지털 혁명, IT혁명은 지금도 매우 활발하고 정열적으로 진행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IT혁명의 과정과 내용을 견실하게 인지하고 옥석을 가려내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러한 차원의 일환으로, 한국 IT산업의 역사, 그 중에서도 도입부에 해당하는 1960년대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IT산업의 출발점은 1960년대로 볼 수 있을 것인데, 이 시기 한국의 사회적인 형국을 먼저 생각해보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로 접어들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정권이 시작되면서 개발독재가 이루어지던 시절입니다. 세계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피폐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이 탄생하기까지 한국인의 저력은 당시에도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라디오 공장(출처: 대통령 기록관 www.pa.go.kr)

한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해 나갔습니다. 1960년대 한국은 국민소득이 너무 낮아서 내수만으로는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정부는 소비재 수입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수출 장려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서 사실상 독점적 수입을 거두게 된 국내 기업들은 노동자의 희생 등 상당한 병폐를 안고는 있었지만, 급격하게 덩치를 키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60년대는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기였습니다. 국가 인프라 산업을 구축하고, 도로와 철도, 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투자를 확대하고, 전력과 같은 에너지원을 확충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1960년대 한국의 상황은 아직은 컴퓨터나 본격적인 IT사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보통신의 맹아는 싹트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초창기인 1961년 8월 체신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선공중전화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환원을 호출하는 수동단신방식으로, 가입자의 동시통화는 극히 어려웠으며, 통화품질 역시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1973년 교환원을 거치지 않는 기계식 차량 전화 방식의 이동전화가 개통되면서 이러한 문제는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제 1차 통신사업 5개년 계획에서는 전파 관리 시설을 확대하고, 통신기술훈련소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1971년에까지 이르는 2차 계획을 통해 시설투자를 확장하고 통신 기기의 국산화를 촉진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전화 가입자는 56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¹
1961년에는 내무부 통계국에서 IBM의 천공카드시스템인 PCS(punch card system)를 도입했습니다. 이 기계로 국제조사간이센서스자료를 처리하였습니다. 1966년 10월에는 간이인구센서를 수행하는데, 최초로 IBM1401 컴퓨터를 활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한국학 중앙연구원, 1991) 1967년 4월에 경제기획원통계국에서 국내 최초로 IBM사의 컴퓨터 IBM1401 전산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한국IBM을 설립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미국과 일본의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²
여기서 잠깐 당대 IT사업을 이끌었던 글로벌 기업 IBM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IBM이라는 회사는 국제 사무기기 회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11년 설립되었고, 1924년부터 해당 사명을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1933년에 세계 최초로 전동타자기를 개발했고, 1960년대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20세기 최대의 IT 공룡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메인프레임이라는 대형컴퓨터를 만드는 하드웨어 업체였지만 1980년대는 PC를 주로 생산하였고, 1990년대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의 분야에도 진출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IT업계에서 과거만큼 압도적인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1961년 당시, IBM의 상황을 보면 IBM에서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속도가 100배 정도 빠른 IBM7030이라는 컴퓨터를 출시했습니다. 총 169,100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되었고, 1초에 약 100만개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IBM의 컴퓨터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우리나라 역시 최초의 컴퓨터를 IBM에서 수입하게 됩니다.
1962년에는 이만영 박사가 만든 전자계산기가 처음 가동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한국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양대학교 교수였던 이만영 박사는 수학계산을 위해서 약 610여개의 진공관을 수동으로 조립하여 전자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1963년에 만들어진 2호 전자계산기는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1호기와 2호기는 불에 타버렸고, 1964년 만든 3호기만 남게 되었는데, 그것도 지금도 한양대학교 기념관에 남아 있습니다. 이 3호기는 진공관식 전자장치를 이용해서 고등 미적분 계산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기계였습니다.³
하지만 그때 이미 외국에서는 트랜지스터를 이용해서 컴퓨터를 만들던 시기였으니 우리나라의 기술이 그만큼 뒤져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로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어낸 열정은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한국전자계산소, KIST(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전산실이 만들어졌고, 외국에서 컴퓨터를 수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1968년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에서 전자자료처리학과가 생겨났고, 1969년에는 서강대학에서 교육기관에서는 처음으로 컴퓨터 SS-80을 도입하였습니다. 1969년 10월에 서울 홍릉에 KIST단지가 세워지면서 전산실도 만들어졌습니다.

IBM_1130 콘솔 (출처: 위키피디아)

1969년 12월 김기용 교수의 주도로 IBM1130을 도입하여 미국의 대학 교과과정을 참고로 교과목을 정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1970년에는 숭실대학교에서 전자계산학과를 만들어서 30명의 신입생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기계나 인프라 뿐만 아니라 고급 인력들도 많이 투입되었는데, 국가 차원에서 해외에서 거주하는 과학자들을 초빙하여 KIST를 만들었습니다. 초대 소장은 최형섭 박사님이고 초대 전산실장으로는 성기수 박사였습니다. 해외의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적은 연봉에도 조국에 대한 애정 하나로 한국 IT산업에 뛰어든 그 인력들이야 말로 현재 한국 IT산업의 가장 큰 초석이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1960년대 한국 IT산업의 상황은 국가적인 주도로 정부,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정보통신망 인프라가 구축되는 상황이었고, 서구의 기계와 기술을 도입하면서 하나씩 배워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국에서 공부하던 훌륭한 인재들이 기술보국(技術報國)이라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귀국하여 한국 IT기술의 기반과 초보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참고문헌¹: 한국이동통신 서비스 및 단말기 산업의 변천과 발전 방향 (서울대학교 출판부)
참고문헌²: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산업통상자원부)
참고문헌³: 한양대학교 뉴스포털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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