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IT 네 번째, 인터넷의 아버지들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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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IT사에 또 하나의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인터넷이 라는 거대한 온라인 세계의 구축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의 발달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켰고, 인터넷의 발달은 그 확장된 능력으로 만들어진 정보와 생산물들을 연결하고 공유시켜서 인류전체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실로 이것은 인류사에서 큰 진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당장 앉은 자리에서, 아니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 수십억 대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 명이 만든 온라인 프로그램과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개인이 인류 전체의 집단지성이라는 엄청난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시점은 불과 몇 십 년 전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역사 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있어서 불가능했던 일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후세대는 반드시 인류사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 중의 하나로 기록할 것입니다.

릭라이더와 아르파넷

1960년대 초반 심리학자 릭 라이더는 초기 인터넷 개념을 만들면서 컴퓨터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젖혔습니다. 릭 라이더(Joseph Carl Robnett Licklider)는 다중 사용자가 한 컴퓨터에 접속하여 동시에 일을 하면서도 일 처리를 하는데 있어서는 크게 방해받지 않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바로 TSS(Time Sharing System) 즉, 시분할시스템입니다. 시분할 시스템은 컴퓨터의 연산 처리 속도와 사용자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컴퓨터의 연산 처리 속도는 지극히 빠른 방면, 사용자가 키보드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 결과 값을 받기까지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따라서 한 사용자가 데이터 입력과 출력을 하는 사이에 비는 시간이 생기는 동안 다른 사용자가 또 입력과 출력을 하는 것인데, 한 컴퓨터의 시간을 쪼개서 쓰는 것이지만 사용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이론은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념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에도 잠깐 다룬 바 있지만. 인터넷은 1957년 미국 국방성에서 군사 통신망 개발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69년 미국 국방부의 고등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릭 라이더의 TSS개념을 바탕으로, 아르파넷(Arpanet,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이라는 데이터 공유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현실화하기 시작합니다. 아르파넷 프로젝트에는 스탠퍼드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UCLA 등 미국의 대표적인 대학의 연구기관이 참여했는데, 1969년 9월 UCLA의 레오나드 클라인록(Leonard Kleinrock) 교수가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케이블을 통해서 몇 비트의 정보를 전송했고 1969년 10월 29일 UCLA 컴퓨터와 스탠퍼드 컴퓨터 사이에 문자를 성공적으로 전송하면서 최초의 인터넷이 구현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컴퓨터의 대화를 위하여

그리고 1970년대 TCP/IP 인터넷 프로토콜이 개발되어 본격적으로 서로 다른 컴퓨터들끼리 상호 작동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TCP/IP 프로토콜에는 컴퓨터의 통신 상태, 정보의 손실 유무, 정보가 도달할 주소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토콜의 사전적 의미는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규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장해서 해석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세계 공용어와 같은 것이니 남녀노소 피부색이나 태어난 국가가 달라도 영어를 통해 서로 비즈니스를 하거나 교류를 할 수 있듯 각기 다른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가진 컴퓨터가 정해진 프로토콜을 공통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 주소라고 알고 있는 IP는 역시 인터넷 프로토콜의 약자입니다.

TCP/IP 프로토콜의 핵심적인 개념은 빈트 서프라는 수학자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빈트 서프(Vinton Gray Cerf)는 1970년대 중반 스탠포드 대학의 조교수로 일하는 동안 미국 국방성 고등 기획국에서 컴퓨터끼리 연결하는 시스템을 연구했고, 로버트 칸(Robert E. Kahn)이라는 동료 연구원과 함께 TCP/IP 프로토콜을 만들었습니다. 빈트 서프는 이후에도 유엔 산하 기관에 인터넷 기술을 보급하기도 하고, 구글의 수석 부사장으로 근무하기도 하는 등 인터넷과 관련한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빈트 서프의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흔히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르파넷은 초기에 이렇게 군사적인 연구 용도로만 사용되었으나 점차 이것을 활용하려는 민간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그 기술과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교육용, 상업용으로 이전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전 세계의 모든 정보가 링크에 의해서 연결되는 꿈을 꾸었던 테오도어 넬슨(Theodore Nelson)의 하이퍼텍스트, 하이퍼링크의 개념은 웹에 의해서 실현되었습니다. 테오도어 넬슨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기초한 무한히 확장되는 텍스트 형식을 고안해냈고, 그것을 메멕스(Memex, Memory extender)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과 비슷한 텍스트가 후일 하이텍스트 개념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정보 공유의 이상

전 세계의 정보 공유라는 이상이 현실화된 웹이 개발되기까지의 상황을 잠깐만 살펴보면, 월드와이드웹은 1989년 유럽소립자물리학연구소(CERN)의 연구원이었던 팀 버너스리(Sir Tim Berners-Lee)에 의해서 구현되었습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 컴퓨터에서 생산한 넥스트 큐브를 바탕으로 웹서버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문서를 작성하는 언어인 HTML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웹서버와 HTML을 문서간의 연결 방식인 HTTP와 문서의 위치를 나타내는 URL을 연동하여 모든 문서들이 링크를 통해서 연결되는 월드와이드웹을 만든 것입니다.
앞서 테오도어 넬슨이 꿈꾸었던 하이퍼텍스트가 실현된 것입니다. 하지만 팀 버너스리는 안정된 웹의 구축을 위해서 하이퍼텍스트의 이상 중의 하나였던 모든 개별 사용자가 편집권을 갖고 링크를 추가하는 기능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편집권에 대한 이상은 후일 위키피디아 프로젝트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다른 사람이 만든 정보에 자신의 정보를 덧붙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집단지성을 통한 협업을 구현했습니다. 2005년 네이처는 위키피디아가 백과사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리태니커와 정확도가 비슷하다고 해서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논란을 야기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아직 다 담지 못했지만 인간을 아이언맨처럼 탁월한 능력을 수행하도록 만든 지금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여러 천재들의 치열한 연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인간의 세계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한 인터넷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고 합류할 줄 아는 전망과 통찰력을 가진 사업가는 현실적인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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