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혁명의 영웅들: IT 경영의 귀재, 마이클 델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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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글을 소개해드리는 위시켓은 2019년 시밀러웹 방문자 수 기준, 국내 1위 IT아웃소싱 플랫폼입니다. 현재 8만 이상의 개발업체, 개발 프리랜서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무료로 프로젝트 등록이 가능합니다. 프로젝트 등록 한 번으로 여러 개발업체의 견적, 포트폴리오, 예상기간을 한 번에 비교해보세요:)  대기업 브랜드 PC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컴퓨터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조립 PC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성능과 단가를 비교해서 가장 자신에게 적절한 부품별로 구매한 다음, 그것을 적절하게 조합한 PC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에는 많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직접 발품을 팔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조립 PC를 구매하였습니다. 2000년대부터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대형 온라인 마켓을 통해서 구매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조립 PC의 방식으로 구매하는 흐름은 온라인으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프라인이든 웹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이든, 개인에게 조립 PC가 컴퓨터를 구매하는 방법에 있어서 주류가 된 것은, PC 출시 이후 초창기에 중개상을 없애고 컴퓨터를 직접 조립해서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한 델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델은 조립 PC의 세계적인 원조인 것입니다. 델컴퓨터는 이러한 제조와 판매 방식을 도입하여 미국을 넘어 세계 컴퓨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였고, 창업자인 마이클 델은 2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하면서 한때 미국의 40대 이하 부호 순위 1위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물론 마이클 델은 단순한 PC 유통 분야뿐만 아니라 서버 컴퓨터 시장에 진출해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외에도 프린터, 디지털 가전 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수위를 다투며 IT업계의 거성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이러한 마이클 델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https://www.pexels.com/

타고난 천재 사업가의 어린 시절

마이클 델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지 10년 후인, 1965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델은 경제관념이 매우 강한 집안에서 자라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사업가적인 기질의 토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는데요. 아버지는 치과의사였고, 어머니는 증권 중개사였기 때문에 식탁에서의 주제는 늘 주식이나 금리와 같은 경제 분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델의 아버지는 델이 자신과 같은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3형제 중에서도 유독 사업가 기질이 강했던 마이클 델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시선으로 볼 때는 많은 외도를 했습니다. 유명한 사건 하나를 들어보면, 우표 마니아였던 아버지 친구가 우표를 수집하고 그것을 통해서 경제적인 수익도 거두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표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마이클 델은 여기에서 사업적인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경매로 판매하는 중개상들에게 지불하는 수수료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냈고, 자신이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고안해냅니다. 훗날 성인이 된 마이클 델의 창업 모델이 되었던 컴퓨터를 직접 판매하는 사업 방식의 단초를 여기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델은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자금을 마련해서 우표를 모으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이웃들의 우표를 대신 판매해준다면서 구색을 다양하게 갖춥니다. 그리고 우표 카탈로그를 만들어서 잡지에 홍보해서 우표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중간 마진을 없앴기 때문에 풍부한 제품군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우표 사업은 나름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12세의 어린 나이에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젊은 부호 마이클 델 (출처: www.businesspundit.com)

이외에도, 16살에는 신문 판매업에 뛰어들어 당시 교사의 연봉보다 높은 2만 달러에 이르는 고수익을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마이클 델의 방법은 무분별하게 익명의 대중들을 상대로 판매를 강권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구독할 만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이사를 간 사람들이나, 신혼부부가 신문을 신규로 구독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알아낸 후 그들의 명단을 구해서 타깃 마케팅을 펼친 결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우의 고 김우중 회장 역시 어린 나이에 신문 배달에서 남다른 사업가적인 감각을 발휘해서 다른 배달 사원보다 큰 수익을 거둔 일화가 있는데, 마이클 델 역시 사업가로서의 타고난 수완이 남달랐던 것입니다. 마이클 델의 어린 시절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성은 당시 얼리어답터였던 또래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컴퓨터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델의 경우는 조금 과한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학창 시절 자신이 모은 돈으로 애플 컴퓨터를 구매할 때 집에 도착하기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 우체국까지 직접 가서 들고 올 정도였습니다.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던 델은 고가의 애플 컴퓨터를 완전히 해체하여 다시 조립하는 모습을 보여 부모님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 명문 텍사스 의과 대학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중퇴를 합니다. 그때쯤 델이 완전히 푹 빠져버린 컴퓨터를 조립해서 판매하는 일이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완제품 컴퓨터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높은 사양의 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생이었던 델은 마치 사업가처럼 바빠졌고, 학과 성적도 덩달아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수상히 여긴 부모님이 델의 기숙사를 급습했을 때 델은 황급히 침대 밑으로 부품들을 숨겼으나 부모님은 눈치를 채고 델을 혼냈습니다. 하지만 델은 자신이 IBM과 겨루는 사업가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였고, 얼마 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처럼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델만의 방식으로 성공하다

1984년 발품을 팔고, PC 통신 등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컴퓨터가 어떤 것인지, 제조 원가와 마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낸 델은 불과 천 달러를 가지고 창업했고, 첫해에만 18만 달러, 2년 뒤인 1986년에는 6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델은 어느 순간 직접 판매 방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85년부터 델은 컴퓨터를 자체 제작하면서 터보 PC라는 이름을 붙였고 컴덱스라는 유명한 컴퓨터 전시회에 당시 가장 연산처리 속도가 빨랐던 IBM의 286 컴퓨터보다 2배나 빠른 성능을 가진, 12 MHz 속도를 가진 터보 PC를 절반 가격에 선보이며, 터보 PC와 마이클 델의 이름을 또 한 번 만방에 알리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컴퓨터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구매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파악하여, 강력한 A/S 정책을 실시합니다. 무료 A/S 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24시간 전화 상담을 받아주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또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모든 부품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회사의 재고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공급업체에 알리는 등 당시로써는 선구적인 경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세계 최초로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이클 델은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IBM의 PC 사업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IBM을 넘어 세계 최고의 퍼스널 컴퓨터 제조업체이자 유통업체로 성장하였으니, 1965년생인 마이클 델이 불과 27세였을 때, 1992년 미국 포츈지에서 세계 500대 기업 중의 하나로 델컴퓨터를 선정하였습니다. 1995년에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버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여 업계의 선두를 다투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1998년에는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마이클 앤 수잔 델 캐피털이라는 자선 단체를 세웠고, 2004년에는 전문 경영인인 케빈 롤린스에게 CEO 자리를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왕의 귀환

2007년 복귀한 마이클 델 (출처: 델 코퍼레이션 제공)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배터리 불량 등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겹치고, 중국의 중저가 컴퓨터 공급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등, IT업계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델컴퓨터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마이클 델은 이사회의 요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델은 IBM이 PC 사업 부문을 중국 업체에 전면적으로 넘기고, 소프트웨어 업체로 탈바꿈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듯이, 델컴퓨터라는 사명을 델로 바꾸고 사업 다각화를 시도합니다. 디지털 가전 시장에 진출하기도 하고, 음악 서비스와 같은 엔터테인먼트와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운영체제,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도 뛰어드는 등 종합 IT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는 한편, 현실화되고 있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시대를 착실히 준비하였습니다. 델이 경영을 맡으면서 2017년 PC 분야에서는 다시 미국 내 1위 기업으로 올라섰으며, 서버 시장에서는 세계 1위 업체로 등극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내기 시작했고, 마이클 델 개인은 한때 세계 41위의 부자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마이클 델이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대단한 기술 혁신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IT 기업 중 하나를 운영하면서 선진적인 제조, 유통, 경영시스템을 창조하고 시장에 확산시킨 것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델이 만든 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게는 큰 혜택을 주었고, 델의 경영 방식은 오랫동안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면서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IT 기업들에게 본보기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청년 사업가다운 활력이 넘치는, 아직 55세에 불과한 마이클 델이 앞으로 IT업계에서 또 어떤 마법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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